황정익의 문화로 보는 우리말/ 이율배반(二律背反·Antinomy)
두 개의 상반된 명제가 서로 대립하지만 양립(兩立)하고 있을 때,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한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 중에 하나가 참이면 다른 명제는 거짓이 되어야 하는데, 잘못된 논증이 되어 참인 것으로 간주될 때 생겨난다. 모순(矛盾)과 다른 점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서로 반대되는 명제가 서로 동등하게 양립하는 반면, 모순(矛盾)은 가장 강한 창과 방패처럼 두 개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데도 명제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다.
물질적 탐욕을 버리라고 강연하는 사람이 자신은 엄청난 재력가라면, 탐욕을 버리란 사람이 정작 자신은 물질적 탐욕으로 재력가가 되었다면 이율배반적이다. 신(神)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증명이 불가능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화자(話者) 역시 이율배반적이다. 좋아 죽겠다, 좋은 데 죽다니.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어느 체제가 자유를 강조하면 불평등이 야기되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개를 동시에 정책 목표로 추구한다면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이율배반적이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용어는 철학자 칸트가 “세계를 인식 능력에서 독립된 완결적 전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이성은 필연적으로 이율배반에 빠진다.”고 표현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용어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인간의 인식 능력이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인식하려고 하면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쓴 개념이다.
이율배반(二律背反)과 관련 있는 고사성어로 모순(矛盾)이 있다. 중국 초(楚)나라의 상인이 창[모(矛)]과 방패[순(盾)]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여,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일본의 보수 집단이 시국이 불리하면 종종 동아시아 역사 문제를 왜곡하여 들먹인다. 전범들을 미화, 신격화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며 한국과 중국의 심기(心氣)를 건드리기도 한다. 다분히 제국주의의 정당화, 전쟁의 당위성을 앞세워 보수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이다. 아울러 우리의 영토 독도(獨島) 영유권(永有權)에 대해서도 억지 주장을 일삼고 있다.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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